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밥 깁슨 (문단 편집) === 1968년: 라이브볼 역사에 남다 === [[파일:투수 최고 시즌.jpg]] [* 밥 깁슨의 전성기와 함께 언급되는 두 단기 임팩트 최강 투수들인 [[드와이트 구든]]과 [[페드로 마르티네스]]. 보면 알겠지만 셋 다 단일 시즌 내에서 무시무시한 대기록을 세운 것을 볼 수 있다.] 그러던 중, 1968년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운다. 단일 시즌 최고 임팩트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선수이자 이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록인 편이다.[* 기존에 단기 임팩트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대투수였던 [[샌디 코팩스]]는 한 시즌이 최강이었다기보단 여러 시즌이 골고루 훌륭했던 선수였다. 물론 밥 깁슨도 여러 시즌이 골고루 훌륭했지만, 1968년은 확실히 다른 시즌을 능가하는 독보적 활약을 했다.] 그의 최전성기인 1968년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가장 지독한 투고타저 시즌이었다. 오죽하면 정규 이닝 채운 1점대 ERA 투수가 무려 7명이었고 그 해 아메리칸리그에서는 타격왕 [[칼 야스트렘스키]]가 3할을 겨우 턱걸이하는 타율을 찍었을 정도.[* 이 시즌 야스트렘스키의 타율은 .301. 빌 제임스는 이 시즌의 극악한 투고타저를 감안, 야스트렘스키의 3할이 [[빌 테리]]의 0.401의 타율과 같다고 평했다.][* 다만 내셔널리그는 그 상황이 그나마 덜해서 [[피트 로즈]], 펠리페&마티 알루 형제, 알렉스 존슨 등이 3할을 기록했다. 그 결과 아메리칸리그의 [[오클랜드 애슬레틱스]] 찰스 핀리 구단주가 [[지명타자]] 제도를 주장하게 된다.] 당시 깁슨의 성적은 34선발 304.2이닝 28완투/13완봉 22승 9패1.12ERA/258ERA+ 268K/62BB 1.77FIP .853WHIP 11.2bWAR. 스핏볼이 금지되고 공인구가 교체되어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된 이래 유례가 없는 [[평균자책점]] 1.12로 라이브볼 시대 1위를 기록했는데, 이는 데드볼 시대까지 합칠 경우에도 MLB 역대 4위[* 2011년 중에 1880년 팀 키피가 .857의 ERA를 기록한 것이 밝혀져서 기존의 1,2위였던 더치 레너드의 .961과 [[모데카이 브라운]]의 1.038이 한단계씩 밀렸다. 조정 평균자책 1위였던 2000년의 [[페드로 마르티네즈]](291) 역시 1880년의 팀 키프(293)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.]에 해당하는 놀라운 기록이다. 데드볼 시대에는 투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했으므로 이런 기록이 나오기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1968년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. MLB 사무국은 이런 미칠듯한 투고타저에 대한 대책으로 이듬해 69년부터 마운드 높이를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추고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는 등 룰을 개정하였고 실제로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이 2.99에서 3.60으로 오르는 성과가 있었다. 거기에 리그 확대로 인해 팀이 각 리그별로 2개씩 늘어남에 따라 선수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[* 실제로 2개의 신생팀([[시애틀 매리너스]], [[토론토 블루제이스]])이 추가로 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1977년 아메리칸 리그의 리그 평균 OPS는 0.735로 이전 해(1976년)의 OPS 0.681에 비해 무려 0.054가 올랐고, 리그 평균자책점도 3.52에서 4.06으로 상승했다.] 또한 한 몫 했다. 깁슨 역시 평균자책점이 오르긴 했지만 1969년에 314이닝 2.18ERA 10.4bWAR을 기록했다. 이 규정 변경의 제일 원인제공자가 깁슨이었으므로 이를 '밥 깁슨 룰'이라 부르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